"이율배반의 자동 인형"
토르쉐 박사의 천재성과 집념이 깃든 자동인형, 지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었다. 박사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기술과 집착, 그리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염원이 한데 얽혀 탄생한 특별한 존재였다. 완성을 눈앞에 둘 만큼 정교하게 조립된 그녀의 몸에는, 단순한 프로토타입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공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토르쉐 저택에서 의문의 폭발이 일어났다. 혼란 속에서 지젤은 저택에서 사라졌고, 누구도 그녀가 어떻게 실종되었는지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지젤은 세상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 버려진 채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비와 흙, 몬스터들 사이에서 부서져 가던 지젤을 도와준 것은 토르쉐 저택의 메이드장 제이나 듀프레시였다. 그녀는 저택의 여분 자재와 남은 동력원을 조금씩 가져다주며, 지젤이 완전히 꺼지지 않게 생명을 이어 주었다. 그 작은 선의는 망가진 기계의 내부에 긴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겼다. 꽤 긴 시간이 흐르고 폭풍우 치던 어느 날 밤, 낙뢰가 지젤의 손상된 동력부를 꿰뚫었다. 정상이라면 파괴되었어야 할 그 순간, 그녀의 몸 안에서는 뜻밖의 오류가 일어났다. 토르쉐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었으리라 믿고 싶어 하는 마음과, 버려진 존재로서 세상과 토르쉐를 증오하는 마음이 서로 갈라져 공존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젤 안에는 ‘사랑’과 ‘증오’라는 두 개의 의지가 생겨났다. 서로를 부정하면서도 서로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두 인격은 숲에 흩어진 폐자재와 제이나가 남긴 흔적들을 바탕으로 천천히 몸을 수리해 나갔다. 마침내 다시 일어선 지젤은 무거운 캐논을 들어 올리고, 자신이 태어난 장소였던 토르쉐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이 왜 만들어졌고, 왜 버려졌으며, 그 손길이 끝내 자신에게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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