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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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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가이드 개요

베스파뇰라의 상세 연대기

암흑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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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베스파뇰라력

주요사건

 상세

0

(기원전,2147)

베스파뇰라 건국

 

스트라타비스타의 제사장은 지금의 구대륙 서부 지역을 무력으로 점거하기 시작했다.

 

정복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 되었고, 몇 백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영역을 확보했다.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 제사장은 이주해온 지도계층 중 한 명을 왕으로 내세웠고 그가 베스파뇰라의 초대 국왕, '카를 1세'이다 

 

대륙의 새국가 '베스파뇰라'의 건국이다. 

 

형제의 국가라 불리며 베스파뇰라 서쪽에는 그녀의 여동생인 '에스트리아 1세'가 '오포루토'를 건국했다.

 

 

 
대전쟁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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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베스파뇰라력

(오르페시아)

주요사건

 상세

2147

대전쟁

 

인류는 과거의 통합된 사회를 잊은 채 끊임없이 서로의 영토를 정복하고자 정복전쟁을 진행했다.

 

서로의 이득을 위해 동맹을 맺는 경우도 있었고 공통의 적대 세력이 무너지면 다시 서로가 전쟁을 하는 극히 원시적인 형태의 사회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스트라타비스타의 제어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2697

(550)

죽음의 땅,  

심연의 사도 '스올' 

 

 

과거, 오스큐라스와 함께 묻혀버린 '심연'을 스트라타비스타 소속의 '스올'이 발굴해내게 되고, 심연과의 계약을 통해 '템피르'와 '메테르'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심연의 기운에 취해 본래의 자신을 잃어가는 스올을 보며 스트라타비스타는 '실패'를 인정하고 그를 처단한다. 

 

많은 사상자를 내며 스올을 제압했지만 '생의 계약'에 의해 템피르와 메테르가 폭주하게 되고 이들 셋을 과거 신들이 함께 했던 대륙 깊숙한 곳에 봉인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이곳을 '죽음의 땅'이라 명명한다. 

 

2715

(568)

제 1차 왕위 계승 전쟁

 

베스파뇰라는 왕의 적통 자제가 왕위를 계승하는 방식이 아닌 귀족들의 투표에 의해 왕을 선출한다. 

 

당대 국왕 '카를 13세'의 서거 이후의 왕위 계승을 두고 귀족들간의 다툼이 일어났고 급기야 두 왕족 가문인 '펠리페'가와 '에스페란자'가의 자제를 두고 귀족들이 갈라져 왕위 계승 전쟁이 벌어졌다.


펠리페 가문의 승리로 전쟁이 끝이나며 펠리페 가문의 적통이 왕위를 계승했고 에스페란자의 여식은 처형되었다.

 

후대에는 이를 '제 1차 왕위 계승 전쟁'이라 불리며 '펠리페'가문과 '에스페란자' 가문의 영원한 싸움의 시작이라 일컫는다. 

 

2914

(767)

제 2차 왕위 계승 전쟁

 

과거 피비린내 가득한 1차 왕위 계승 전쟁을 기억하며귀족들은 '펠리페' 가문과 '에스페란자' 가문의 자제를 1번씩 바꿔가며 왕으로 선출했다. 

 

이에 에스페란자 가문의 자제를 왕으로 즉위시키려고 하였으나 쌍둥이 자매였던 에스페란자 가문 내에서 왕위 계승으로 다툼이 일어났고 급기야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두 자매 모두 전쟁의 불꽃으로 산화했고 에스페란자 가문의 실책을 지적하며 펠리페 가문에서 왕위 계승권을 회수했다. 

 

 

 
구 개척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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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베스파뇰라력

(오르페시아)

주요사건

 상세

3636

(1489)

베스파뇰라&타르가

불가침 조약

 

타르가의 지원을 받던 도시 국가 나스르가 베스파뇰라에 의해 멸망.
나스르 왕국의 오르페시아 대륙에서 타르가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결국, 베스파뇰라 - 타르가 양 국가는 휴전.
더 이상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3639

(1492)

베스파뇰라 -

산초 4세 즉위

 

베스파뇰라 국왕 펠리페 2세가 낙마 사고로 서거했다.
그러나 왕자가 너무 어린 관계로 왕위는 선왕의 동생이 차지하여 산초4세로 즉위했다.  

 

선왕의 왕자는 펠리페의 이름을 잇고 대공에 봉해졌다. 

 

3641

(1494)

오르페시아 -
오포루토&베스파뇰라 합병

 

오포루토의 국운을 걸고 진행한 신대륙 개발은 처음엔 사뭇 순조로웠다.  

 

신대륙에서만 나는 특이한 광물들과 질 좋은 석재, 아직 누구도 손댄 적 없는 금은광산이 오포루토를 열광케 했다.  

 

그러나, 신대륙의 산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산업인프라를 세워야 했고 그를 위해 오포루토는 무리한 국채 발행을 시작했다.

 

또한, 신대륙 러쉬에 몰린 사람들로 신대륙에만 비이상적일 정도로 국력이 집중되었고

(한 때, 오포루토의 성인 남자 중 9할이 선원이나 신대륙 개발에 종사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로 인해 본국 1차 산업의 기반이 흔들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신대륙의 개발만 완료되면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믿었지만 애석하게도 개발의 결실이 나오기도 전에 오포루토라는 국가의 근간이 흔들려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신대륙과 오포루토의 해양 자산에 눈독을 들이던 베스파뇰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포루토의 국채 탕감을 조건으로 제안된 합병은 두 왕가의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베스파뇰라 왕 산초4세와 오포루토 여왕 트리에스테는 미혼이거나 배우자와 사별하고 있었다.  

 

특히 다행이었던 것은 오포루토와 베스파뇰라가 시조를 같이하던 국가였다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같은 시조에서 갈라져 나왔고 문화 기반이 같은 두 나라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한 나라로 융화될 수 있었다.

 

신 베스파뇰라의 등장은 오르페시아의 세력 균형에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구 오포루토 계 이민자의 반발을 막기 위해, 베스파뇰라는 '페루초 에스파다'를 신대륙 총독으로 임명. 베스파뇰라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3642 

(1495)

베스파뇰라 - 

코임브라항 1차 완공 

 

포르토 벨로를 대신할 코임브라항이 1차 완공되어 구대륙과 신대륙을 이어주는 새로운 관문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3644

(1497)

에스페란자 공주 탄생

 

베스파뇰라와 오포루토 합병의 결실로 에스페란자 공주가 탄생했다. 

 

베스파뇰라 - 

리볼도외 건설 

 

신대륙 중부 개척의 본거지로 리볼도외 건설이 시작되었다. 

 

3645

(1498)

베스파뇰라 -

페루초 삼거리 건설

 

리볼도외와 코임브라를 잇기 위해 페루초 삼거리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베스파뇰라 -
페루초 귀국과 

스트라타비스타의

접근 

 

신대륙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 총독 페루초는 본국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기 위해 잠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또한 비밀리에 얻은 딸의 양육을 도와줄 사람도 필요했다. 그는 본가의 하인들을 모두 해고했으나 충실하고 입이 무거운 젊은 하녀, 레오노라만은 딸의 양육을 위해 남겨 두었다.

 

이후 그의 딸은 레오노라의 보살핌하에 자라나게 된다. 

 

한편 베스파뇰라의 실력자 펠리페 대공과 스트라타비스타가 그에게 접근해 조직에 몸담을 것을 권유한다.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느낀 페루초는 기꺼이 스트라타비스타와 손을 잡지만 향후 10인귀족으로 일컬어지는 펠리페 대공의 측근 제후의 자리를 받는 것은 거절한다.

 

그는 이후의 고대 문명 탐사과정에서 이미 스트라타비스타가 갖고 있던 지식과 막대한 자금력, 조직의 지원을 받는다.  

 

이때부터 부관 질베르토 그라나도는 페루초에게 뭔가 비밀이 생겼음을 눈치채고 의심을 키우기 시작한다.

 

3646

(1499)

베스파뇰라 - 

페루초와 노비아  

 

 

노비아는 베스파뇰라 대상인의 딸로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부리는 데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그런 그녀가 사랑에 빠져 들게 된 것은 왕실 주최의 연회에서 대모험가이자 신대륙공인 페루초를 만났을 때였다.  

 

그녀는 희끗해지기 시작하는 페루초의 수염과 머리카락, 신대륙공의 이름이 주는 여유와 근엄함에 도저히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시 페루초는 비밀리에 신들의 유산을 찾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한 눈에 그녀의 이용가치를 알아본 페루초는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의 탐사를 후원했다. 

 

하지만 신대륙으로 돌아간 페루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쳐 정보를 캐낸 끝에 그에게 숨겨진 딸과 하녀를 정부로 둔 것 같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10대의 설레이는 첫사랑은 단번에 지옥불과도 같은 분노와 증오로 바뀌고, 때마침 접근한 펠리페 대공의 제안을 받아들여 페루초에 대한 복수를 용인하는 대가로 10인귀족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펠리페의 측근이던 몬토로를 알게 되어 연인이자 오른팔로 삼았다.

 

3657

(1510)

베스파뇰라 -

에스페란자 여왕 즉위

 

베스파뇰라 국왕 산초 4세가 사망하고 후계로 유일 비속인 에스페란자 공주가 여왕으로 즉위했다.  

 

펠리페 대공 일파는 정당한 계승권을 주장하며 극심하게 반발했으나 오포루토 유민의 민심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밀려났다.  

 

에스페란자 여왕 즉위와 동시에 코임브라 2차 항구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 때 신대륙의 마물들이 너무 기승을 부리는 탓에 페루초 삼거리의 건설은 일시 중지되었다. 

 

왕위를 힘으로 빼았겼다고 생각한 펠리페 대공은 언젠가 복수를 다짐하며 힘이 될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특히 대륙 최고의 마법사인 알폰소 에르난데즈가 자처하여 그의 막하로 들어오고, 스승이 된 에르난데즈의 안배에 따라 후에 10인귀족이라 불린 강력한 제후들을 하나둘씩 포섭하기 시작했다. 

 

3660

(1513)

베스파뇰라 -

몬토로, 남작 작위

수여

 

몬토로는 원래 펠리페 대공 가문의 가신집안 출신이며 그다지 높은 지위를 갖고 있진 않았다.

 

펠리페의 마음을 잘 맞추어 주었던 탓에 측근으로 발탁되었고, 에르난데즈의 생각과 행동을 어깨너머로 보며 음모를 꾸미고 상황을 조종하는 방법을 배웠다.

 

페루초에게 배신당한 노비아가 펠리페 대공 일파에 합류하자 마음의 빈자리를 파고 들어가 내연관계를 이루는 것에 성공했다.

 

사교계에서는 10대후반의 젊은 미남자가 성공을 위해 연상의 마녀에게 몸을 팔았다라는 평가가 다분했으나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에르난데즈는 노비아를 조종하기 위해 그를 이용하고자 했고, 에르난데즈의 추천으로 몬토로는 전격적으로 남작위를 받아 10인귀족의 대열에 합류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를 즐겨 꾸미는 탓에 '작은 에르난데즈'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신대륙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자신이 대륙공 페루초를 뛰어 넘어 신대륙을 차지하고 싶다는 야망이 꿈틀거렸고, 점차 노골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갖고자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편 노비아를 어릴 때부터 보필하여 10인귀족의 자리에까지 오른 코르테스틑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으며, 에르난데즈는 그것이 몬토로의 보잘 것 없는 배경에 대한 컴플렉스로 분석하고 있다. 

 

3661

(1514) 

베스파뇰라 - 

토르쉐 박사 10인귀족영입 

 

일리에의 젊은 천재과학자인 페르난도 토르쉐 박사가 에르난데즈의 설득으로 펠리페 대공의 막하에 합류하여 10인귀족의 일원이 되었다. 

 

3666

(1519) 

3년 전쟁 발발

 

합병 이후, 신대륙의 풍부한 물산과 오포루토에 해군력에 힘입어 무서운 기세로 국력을 신장시킨 베스파뇰라.  

 

그리고 오랫동안 오르페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섬나라 브리스티아. 신구 두 세력은 마침내 오르페시아의 패권을 두고 충돌하고 말았다.


노회한 브리스티아 국왕과, 24세의 소녀 여왕 에스페란자의 대결이기도 했다.  

 

3667

(1520) 

베스파뇰라&일리에 

상호방위조약 체결 

 

일리에가 베스파뇰라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브리스티아에 선전포고.

 

일방적인 브리스티아의 승리를 점치던 오르페시아인들의 예상을 무색케 하고 전황은 백중세로 돌아섰다.

 

대륙 지식 사회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대마법사 에르난데즈의 교섭력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으며, 막후에서 활약한 10인귀족과 펠리페 대공의 명성이 대륙 전체에 크게 떨쳐졌다.

 

3668

(1521) 

발레아레스 해전과 

베스파뇰라의 승리 

 

전쟁 내내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점하던 브리스티아와 힘겨운 항전을 거듭하던 베스파뇰라의 주력함대는 1521년 베스파뇰라 북부의 발레아레스 앞바다에서 양국의 운명을 건 일전을 벌였다.

 

몇 배의 전력을 보유한 오르페시아 최강의 브리스티아 함대는 상선과 어선을 급히 끌어모은 베스파뇰라 함대와 혈전을 치른 끝에 양 함대는 서로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전투의 결과만 놓고 보면 무승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브리스티아가 잃은 전력이 훨씬 컸던 데다가 브리스티아의 본토를 방위하는 육군 전력은 해군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브리스티아는 최고의 갑옷를 잃고 무장해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전투에서 토르쉐 박사가 개발한 대량살상 무기가 다수 선 보였으며, 브리스티아의 생존자들은 오타이트라는 물질의 힘을 이용한 기술과 비인도적인 생물병기의 실전사용이 자행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묻혀졌다.


브리스티아는 자랑하던 무적 함대를 모두 잃은 후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베스파뇰라는 발레아레스 해전 이후, 일리에와 타르가를 끌어들여 브리스티아를 고립시킨 후 막강한 육상 전력을 동원해 브리스티아에 상륙, 본격적인 본토 공략에 들어갔고 며칠만에 수도를 함락당한 브리스티아 왕실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전쟁에 승리한 베스파뇰라는 브리스티아의 잠재력을 두려워해 잔혹한 탄압 정책을 잇달아 펼쳤다.

 

브리스티아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렸고 국가 재건의 중추가 될 수 있는 브리스티아의 엘리트들을 학살, 거기에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해상 봉쇄를 풀지 않았다.

 

고립된 브리스티아는 삼류 국가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무자비한 패권주의 정책으로 브리스티아의 척추를 꺾은 베스파뇰라는 명실상부한 오르페시아의 패자가 되었다. 

 

브리스티아 

지식인 대숙청 

 

3년전쟁에서 승리한 베스파뇰라는 브리스티아의 경쟁력을 말살하기 위해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잡아 가두었다.  

 

저명한 생물학자였던 모스테인 박사 역시 사소한 죄목으로 잡혀와 먼 신대륙의 자캥 감옥에 수용되었으며 그곳에서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던가 아니면 연구에 협력하라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죽기 싫었던 그는 몬토로가 주도한 실험에 협력했지만, 마지막에 효용가치가 사라지자 그 역시 실험체가 되어 강제로 언데드화되었다. 

 

 

 
신 개척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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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베스파뇰라력

(오르페시아)

주요사건

 상세

3669

(1522)

레콩키스타 정책 발표

 

기나긴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도 군인은 남는다.

 

전후 베스파뇰라에는 넘쳐나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전쟁 귀족, 또 하나는 그들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소요 사태.

 

전쟁 귀족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투쟁심은 수많은 사회문제를 야기시켰고, 나아가서는 베스파뇰라와 사회 전반의 안정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대두되었다. 

 

그 때 젊은 에스페란자 여왕이 한가지 정책을 들고 나왔다. 레콩키스타(= 재정복) 정책. 3년 전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흘했던 신대륙을 다시 총력을 기울여 개발하자! 는 것이 레콩키스타 정책의 요지이다.

 

그러나 실상 그 이면에는 '전쟁귀족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밖으로 돌려 내치의 안정을 꾀하고, 동시에 신대륙 개발도 도모하자'는 의도가 숨어있다.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각종 소요를 일으키던 전쟁 귀족들은 이 레콩키스타 정책에 구미를 당겨했고, 신분에 상관없이 무한정의 기회가 보장되는 새로운 신천지를 꿈꾸는 이들도 신대륙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신대륙 그라나도 에스파다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3670

(1523)

오타이트 전쟁 발발

 

오르페시아와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다고 판단한 10인귀족은 여왕에게 알리지 않은채 동방으로 진출하여 당인이라는 국가를 알게된다.

 

그들은 당인에는 정식무역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본국에는 보고를 하지않는 방식으로 몰래 밀수를 하여 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비옥한 옥토와 특산물에 매력을 느낀 귀족들은 점차 당인을 귀속 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그들은 오타이트라고 불리는 물질을 가공하여 사람을 환각 상태에 빠뜨리고, 중독성이 강한 약품으로 만든 후 당인의 국민들에게 퍼뜨려 피폐하게 만든다. 

국력이 쇠약해지며 각종 중독으로 국민들이 쓰러지는 것을 알게 된 당인의 왕은 베스파뇰라 귀족들과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소수의 병력으로 당인의 대군이 패퇴하자, 당황한 왕은 정식으로 베스파뇰라에 평화사절을 급파하게 된다. 

 

3671

(1524)

대이주

 

에스페란자 여왕의 '레콩키스타 정책'에 의거하여 베스파뇰라의 전쟁 귀족들이 대거 신대륙으로 이주를 시작. 

 

3678

(1526)

기간떼 군도 개발

 

코임브라 동남쪽에 위치한 기간떼 군도.

신대륙 동부해안의 섬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대륙공 페루초 에스파다가 이 군도에 기간떼(Gigante ? 거대한, 거인, 거인의)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과거 코임브라가 건설되기 전에는 포르토 벨로와 함께 항구로 이용되고 있던 기간떼 섬이지만 현재는 항구로서의 기능은 하고 있지 않다.

 

빼어난 기간떼의 풍경은 개척에 지친 이들이 휴식을 찾아 이곳으로 떠나오게 만들었고
기간떼의 휴양지로서의 시장성을 간파한 본국과 척식주식회사는 기간떼를 휴양지로 개발하기 시작한다.

 

화산섬이며 강력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어 쉽게 접근이 불가능한 불의 섬을 제외한 두 섬은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대부분의 개척자들이 이곳에서 느긋한 휴가를 즐기기 위해 오지만 간혹 '용암의 여왕'을 찾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3679

(1527)

페소 칙령

 

에스페란자 여왕의 레콩키스타 정책의 일환으로 본국의 화폐를 신대륙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공평한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자국민의 신대륙 정착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려는 정책. 베스파뇰라가 오포루토와 일리에를 실질적으로 통합함으로서  점차 페소가 구대륙의 통합 화폐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구대륙의 자국민들이 신대륙에 이주할 때 환전의 어려움을 해소시키고자 함이니, 자국민의 신대륙 진출이 더욱 활발해 질 수 있도록...'라는 내용의 칙령이 발표되어 이제 신대륙에서도 구대륙의 통합화폐인 페소가 통용되게 되었다. 

 

3680

(1528)

제 3문명 발견

 

에밀리아는 검붉은 지하수로에서 아버지 로렌초 박사의 흔적을 발견하고 결국 지하수로 너머 제3문명의 에라크 마을을 찾아내고야 만다.  

 

제3문명과의 접촉사실은 신대륙 뿐만 아니라 오르페시아에도 전해져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신대륙 척식 주립회사와 에라크의 통상교섭

 

개척자들에 의해 제3문명 에라크 마을이 발견되자 신대륙 척식 회사는 베스파뇰라 본국의 방침에 따라 통상교섭을 실시, 막대한 유무형의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상인 배치 권한 등 다수의 통상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한다. 

 

아르센 서커스단 

신대륙 순회공연 

 

펠리페 대공과 에르난데즈는 제3문명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당황한다.

 

그들이 예상하고 있던 것 보다 일이 급진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손들을 보내 조사한 결과 로렌초의 딸인 에밀리아가 고대 문명과의 접촉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에밀리아를 제거하기 위해 대륙 최고의 서커스단으로 가장하고 있는 최강의 암살 조직 아르센 서커스단을 신대륙에 급파한다.

 

아르센 서커스단은 공주의 배려로 리볼도외 별궁에 자리를 잡고 에밀리아의 암살을 계획하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단장 아르센은 개척가문에 의해 현장에서 절명, 부단장 헬레나는 오슈에 가택연금 된다.

 

3682

(1530)

발레리아 공주 구출

 

모종의 이유로 자캥 수용소 가장 깊숙한 감옥에 유폐되어 있던 가브리엘라 공중의 쌍둥이 여동생 '발레리아'가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에 의해 구출된다. 

 

스트라타비스타는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발레리아 공주에 대한 신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차단했으며, 신대륙에서는 신대륙의 해방을 위해 움직이는 공화파가 여러가지 부분에서 유리함을 가질 발레리아 공주를 보호하기로 결정한다. 

 

 

 
르네상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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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베스파뇰라력

(오르페시아)

주요사건

 상세

3684

(1532)

르네상스 선포

 

 

베스파뇰라는 신대륙 개척민들의 활동에 있어 본국의 무거운 '과세 정책'이 문제시 되었다고 판단, 스트라타비스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스페란자 여왕은 과감하게 그들의 어려움을 돕고자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에게 부과하던 과세를 대폭 감면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이를 신대륙의 새로운 도약, '르네상스'라고 칭한다. 

 

카스티야 발견

 

신대륙 남단을 탐사하던 한 개척 가문에 의해 '카스티야' 지역을 발견,
베스파뇰라는 해당 지역의 탐사를 위해 베스파뇰라 제 2함대를 파견한다. 

 

카스티야 광산 

탐사 진행 

 

일반 평범한 광산인줄로만 알고 탐사를 진행하던 탐사대는 광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을 보며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게 되고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의 지원을 받아
무사히 탐사를 마친다.

 

카스티야 유적 

탐사 진행 

 

광산 너머에 있던 곳은 폐허가 된 과거의 마을을 보는 듯 했다. 

 

폐허를 거쳐 내부를 깊숙히 탐사를 진행해본 결과, 이곳은 과거에 번영했던 어느 왕국일 것이라 추측한다.


거대한 유적 탐사를 끝마친 결과, 이 유적은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장막과도 같다라는 결과가 추론되었다. 

 

카스티야 혼돈의 탑 

탐사 진행 

 

유적을 지나 그들이 본 것은 장황한 '고대 신전' 이었다. 살아있는 지성체라고는 없었지만 그들의 과거 문명이 얼마나 발전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신전의 끝에는 하늘로 높게 치솟아 있는 거대한 탑이 있었다.


탑에는 현재의 기술력과 마법으로 구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고대의 마법과 과학이 집대성된 피조물들이 가득했고, 그곳의 끝까지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자는 없었다고 한다. 

 

3685 

(1533)

신대륙  개척 가문

'바이런' 입항 허가

 

세상의 끝이라 불리웠던 섬, '바이런'으로 신대륙 개척민들의 입항을 허가한다는 에스페란자 여왕의 공문이 내려왔다. 

 

많은 반대에도 무릅 쓰고 에스페란자 여왕은 '신대륙 개척민들도 나의 백성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바이런은 본국과 신대륙을 잇는 교두보로서 개척민들에게 개항되었다. 

 

십인귀족 몬토로 

'사망' 

 

베스파뇰라의 십인 귀족, '몬토로'가 의문의 암살자로부터 살해 당한다. 

 

십인귀족 해체

 

베스파뇰라의 십인 귀족으로서 이름을 떨치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비올라케아에 합류 또는 사망으로 인해 이탈하며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자 펠리페 대공은 십인 귀족을 해체, '신 십인 귀족'이라는 명목 하에 새 귀족들을 선출한다. 

 

현재까지 신 십인 귀족으로 알려진 자 : 펠리페 대공, 에르난데스 후작, 베아트리체, 트루먼 박사, 유르겐 푸르홀렌, 레놀드 감찰관, 반, 레오나 베르니에 

 

3686 

(1534)

신대륙 입항 허가'

 

 

십인 귀족 몬토로 사망 후 베스파뇰라 국내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브리스티아의 신임 총독 '케스 키엘체'는 브리스티아의 신대륙 개척민 입항을 허가한다.


이례적인 행동에 많은 키엘체 보수파, 베스파뇰라 귀족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특유의 인사 수완을 통해 무사히 공문을 신대륙에 발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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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5)

브리스티아,

'독립 전쟁'

 

3년 전쟁 이후, 베스파뇰라에 모든 국정을 빼앗긴 브리스티아가 오랫 동안 준비해온 '독립 전쟁'을 개시한다. 

 

이를 대비하여 파견된 신 십인 귀족 '레놀드 감찰관'과 '블러드 네이비'는 브리스티아 독립군과 교전하지만,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과 과거 3년 전쟁에서 활약한 '브리스티아 용사'들의 투혼을 바탕으로 레놀드 감찰관은 전사하고, 블러드 네이비는 많은 사상자를 내며 패전한다.


이에 스트라타비스타는 브리스티아 독립 전쟁을 도운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도 반역자로 규정 짓고 토벌을 개시해야 된다고 언급했지만 여왕은 '그들도 자신의 가치와 선택을 존중 받을 한 명의 사람이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또한 브리스티아에 대한 식민 정책 또한 근본부터 잘못되었으며, 그들의 자유를 인정한다. 물론 그들이 베스파뇰라의 통제에서 벗어날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이라는 말과 함께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여왕은 새로운 블러드 네이비 감찰관을 파견했고, 키엘체의 총독도 이빨은 드러냈지만 아직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에 다음 단계를 진행하고자 준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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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6)

'레오나 베르니에'

바이런 파견

 

브리스티아 독립 전쟁에도 불구하고, 스트라타비스타는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여왕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이에 에르난데스 후작은 구대륙에서 요인 암살 및 스트라타비스타 최고의 여전사라고 칭송되는 '레오나 베르니에'를 바이런 '펠로페 성'의 새 성주로 임명한다. 

 

'장미 공작'의 부활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장미 공작, '레오나 베르니에'는 스스로를 '에스페란자 여왕'의 대리인이라 밝히며, 비올라케아에 합류한다. 

 

되찾은 시간

 

에르난데스 후작은 비올라케아와 배신자 '레오나 베르니에', 그리고 신대륙의 개척 가문을 없애고자 바이런 지하에 숨겨져 있던 신들의 유산 중 하나인'되찾은 시간'을 가동시킨다.

 

되찾은 시간으로 이들 모두를 살해하려 했으나 신의 안배였는지 바이런의 모든 시간은 장미 공작이 바이런으로 들어오기 이전으로 돌아가버렸고, 장미 공작은 대부분의 힘을 잃게 된다.


장미 공작은 스트라타비스타의 움직임 감시와 오르페시아의 정세 파악 등을 비올라케아에게 협조해주기로 하였고, 비올라케아는 신인의 보호와 신대륙의 스트라타비스타 축출을 통해 에스페란자 여왕에게 봉사하겠다며 공동 전선을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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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버전 :
1.34
최종 수정일 :
2016-02-24 오후 8:22:56
최종 편집자 :
그라나도 에스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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