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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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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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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주요사건

 상세

기원전 10000

영원의 핍박

 

인류는 탄생 이래, '심연'이란 존재들의 에너지원으로서 지상에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왔다.  

 

인간에게서 생성되는 악한 감정에 의해 '심연'은 더욱 더 강해졌고, 심연의 무리들은 그런 악한 감정을 통해 더욱 더 강해졌다.

 

기원전 8000

해방과 변영

 

인류를 양분 삼아 심연은 나날히 강해져 결국 신에게 도전하기까지 이른다.

 

인류와 심연,  그리고 지상의 모든 관계는 '순환'에 모두 맡기기로 했던 신은 오만함의 끝에 다다른 심연을 징벌하고자 다섯 아이와 함께 지상에 강림한다.

 

이로부터 약 천 년 동안 신은 다섯 아이들과 함께 심연과 싸웠고, 결국 승리하였다.

 

심연 역시 신의 창조물이었기에 신은 그들을 차마 죽이지 못하였고 결국 지하 깊은 곳, 인류와 완전히 격리된 '업화의 땅'으로 추방한다. 

 

이와 함께 인류는 자신들을 심연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신을 추앙했고, 신은 인류를 보살피며 그들에게 많은 문명을 알려주었고 신의 보호 아래 인류는 '황금 시대'를 맞이했다.

 

기원전 5000

황금 시대의 종언,

'스트라타 비스타'

 

 황금시대가 이어지던 어느 날, 신께 마법을 계승하던 한 남자는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고자 죄를 지은 죄수를 마법을 사용해 그를 죽음으로 인도했다.

 

이에 신은 생명의 소중함을 언급하며 남자를 타일렀지만 남자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추종하는 집단을 만들며 신을 거부하고자 했다.

 

결국 문명과 인류의 진화는 새로운 반목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생각한 신은 인류를 버리고 다섯 아이들과 함께 자신들이 왔었던 '그 곳'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암흑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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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주요사건

 상세

기원전 5000

황금 시대의 종언,
'스트라타비스타'

 

신과 다섯 아이가 '그 곳'에 돌아가기 위해 준비를 마치자 수 많은 인류,  그 중에 그 남자 역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며 신께 함께 있기를 호소하지만 신은 단호했고 결국 신과 다섯 아이는 '그 곳'으로 돌아갔다. 

 

신들이 하늘로 돌아간 후, 거친 자연에 홀로 남겨진 인간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천둥이 쳐도 폭풍이 불어와도 대자연의 분노를 잠재워줄 보호자들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인류는 신들을 모시던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홀로서기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사장들은 신들이 남기고 간 지식의 조각을 나누어 보존하고, 그로서 인간들을 다스리며 신의 재림을 기다리기로 하였으니 그들은 스스로를 스트라타비스타(Stratavista)라 부르기 시작했다.

 

기원전 3000

스트라타비스타',

그리고 오르덴

 

스트라타비스타들은 신들이 머지 않아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신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알아볼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최대한 변하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인류가 그들에 대한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었을 즈음, 그들은 인류 집단의 최고 우두머리가 되거나 혹은 우두머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비밀스런 조직이 되어 있었다.  

 

스트라타비스타는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정치와 경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행사했다.  

 

왕을 조종하고 지하경제를 움직였으며 때로는 원하는 목적을 위해 정치적 암살도 서슴치 않고 감행했다.  

 

그들은 몰랐다.  

 

신의 다섯 아이 중 한 아이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채 지상에 남아 인류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원전 2500

오르덴의 창

 

대륙 곳곳에 종말의 전조가 보였다.  

 

다섯 아이 중 하나, '오르덴'이 인류의 멸망을 이루고자 홀로 인류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스트라타비스타는 고대의 지식을 바탕으로 오르덴에게 대항하지만 신의 힘은 인류가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인류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안식'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기원전 2489

5대 원소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은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인류가 '지상의 존재'가 아닌 외부의 존재에 의해 '순환'이 끊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신께서는 두번 다시 내려갈 수 없는 지상에 신의 '다섯 힘'을 내려보냈다.  

 

후대에는 이것을 '5대 원소'라고 부르는 이 힘을 한 소녀가 신에게로부터 받아 오르덴과의 전쟁에 사용했다.

 

기원전 2485

오르덴의 봉인

 

신의 힘을 전해 받은 소녀는 오르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를 '영원의 감옥'에 가두었지만 힘이 다한 나머지 5대 원소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5대 원소는 부서지면 다시 본래의 형태로 회귀하려는 특성 때문에 본래의 형태로 회귀하고자 전 세계로 흩어진다.


오르덴의 봉인 이후 스트라타비스타는 신과 인류의 역사를 숨기려 대륙을 버리고 새로운 대륙으로 이주한다. 이 대륙을 후세에는 '오르페시아'라고 부른다.

 

기원전 2147

오르페시아

 

스트라타비스타의 강압적인 이주 정책에도 불구하고, 오르덴을 쓰러트린 소녀의 힘과 의지를 이어 받은 자들은 대륙에 남았고, 후대에는 이들을 '신인' 또는 '신인의 후예'라 불렀다. 

 

대륙 '오르페시아'로 사람들을 이끌고 온 스트라타비스타는 오르페시아를 개척한 후 통합된 대륙의 통일 국가를 분열시켰다.  

 

북쪽 섬에는 '앵글', 서쪽 반도 끝에는 두 남매가 각각 '오포루토'와 '베스파뇰라'를 세웠으며,  대륙 중앙에는 스스로를 '군신 바키르의 후예'라고 칭하는 '토람'과 그에 반하는 '엘르하'가 건국된다.


이외에도 수 많은 중소 국가들이 건국되며 인류는 분열의 시대를 맞이한다.

 

기원전 1654~0

대전쟁

 

인류는 과거의 통합된 사회를 잊은 채 끊임없이 서로의 영토를 정복하고자 정복전쟁을 진행했다. 서로의 이득을 위해 동맹을 맺는 경우도 있었고 공통의 적대 세력이 무너지면 다시 서로가 전쟁을 하는 극히 원시적인 형태의 사회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스트라타비스타의 제어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대전쟁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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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오르페시아력

주요사건

 상세

기원전 0

아르모니아 1차 성전

 

'프로페'라 불리우는 고고학자에 의해 '마신 강림'이 시도되었고, '데노브 요새 전투'에서 최초의 악마 '오스큐라스'를 불러낸 베스파뇰라의 군대는 엘르하의 데노브 요새를 무너트리지만, 스트라타비스타는 과거의 역사에서 심연의 존재에 대한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프로페를 처형한다.


이에 의식의 공명이 끊긴 오스큐라스는 자아를 잃고 살육만을 일삼는 살인귀가 되고
그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심연의 군대들에 의해 인간과 심연과의 전쟁이 재발한다.


후대 대성녀라고 불렸던 프로페의 장녀, '사라'와 후대 메멘토 모리의 기원이 된

프로페의 아들 '모리'의 희생과 투쟁으로 인류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스트라타비스타는
심연의 위험성과 이 모든 역사를 은폐하고자 심연의 길이 있었던 그곳에 대성당을 세우고 '신성시국'으로 명명한다.


이는 후대에 '아르모니아'라고 불리우는 성국의 시작이다.

 

50

엘르하 붕괴, 

'자유의 일리에' 

 

절대 왕정을 바탕으로한 무분별한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 엘르하의 '일리시아' 귀족

가문을 중심으로 한 세 귀족은 '자유'를 위해 왕실에 맞섰다.

 

내전은 결국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한 '일리시아' 측이 승리하였고,왕정은 무너지며

'일리시아' 가문이 황제로 추대된다.


후대 사람들은 이 국가를 '자유의 일리에'라고 부른다." 

 

294

칼리프 → 술탄, 

'토함' → '타르가' 

 

군신 바키르'에 대한 교리를 섭렵, 포교하는 '바키르 정교'의 신권과 '토함'을 다스리는

왕정은 분리되어 있었으나 사사건건 바키르 정교는 정치에 개입하며 토함의 국가 경제를 근본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이에 국가의 위기를 관망할 수 없었던 정복영웅 '진 타르가'는 바키르 정교를 무력으로

제압, 곧 이어 왕의 양위를 받으며 '신권'과 '왕권'을 모두 손에 쥐게 된다.

 

그는 '군신 바키르'가 이끄는 이상 국가를 만들겠다고 맹세하며 새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후대 사람들은 이 국가를 '사막의 타르가'라고 부른다.

 

이후 타르가는 맹렬한 정복전쟁을 펼치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주위 국가들과의

분쟁을 줄이고 협정과 휴전을 통해 주변 국가들을 포섭하기 시작한다.

 

408

일리에 - 타르가 

1차 대전쟁 

 

내부 군세를 정리한 타르가는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인접한 국가였던 일리에가 그 첫 목표.  

 

타르가는 일리에에 선전포고 후 전쟁을 개시한다.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일리에는 타르가의 맹렬한 공세에 밀리는 듯 했으나
자신을 희생하며까지 프리실라 대평원을 지켜낸 샤우젠 후작과 헤르베르트 후작의

분전에 힘입어 반격에 나선다.


타르가는 바젤란느 마법 병단의 마법 포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결국 타르가의

패전으로 끝났다.

 

455

영광의 브리스티아

 

북방의 섬나라 '앵글'은 대륙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어갔다.


부족 및 연맹 체제의 국가였던 앵글은 바다 건너 '사막의 타르가'의 정복 전쟁에 맞서며
단순한 부족 체제로는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판단, 여러 부족들이 모여 왕을

선출했고, 왕은 당시 보병으로 일괄된 전투 시스템을 말을 탄 전사, '기병 전법'을

최초로 사용하며 타르가의 정복 전쟁을 저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을 '사자왕'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가문 이름을 따 '브리스티아'로

국가명을 개정한다.

 

500

동방 4연맹 체제

 

스트라타비스타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동방의 4개국은 자신들만의 문명을 꽃 피우며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갔다.


과거에 타국가를 적대시하며 전쟁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오르페시아의 중앙을 장악 후, 동서방으로 정복 전쟁을 통해 진출해나가는 타르가를 견제하려 동방의 4개국은 연맹을

성립하고 이후 4개국은 서로를 '형제 자매의 나라'라고 부른다." 

 

550

죽음의 땅,

심연의 사도 '스올'

 

과거, 오스큐라스와 함께 묻혀버린 '심연'을 스트라타비스타 소속의 '스올'이 발굴

해내게 되고, 심연과의 계약을 통해 '템피르'와 '메테르'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심연의 기운에 취해 본래의 자신을 잃어가는 스올을 보며 스트라타비스타는

'실패'를 인정하고 그를 처단한다.


많은 사상자를 내며 스올을 제압했지만 '생의 계약'에 의해 템피르와 메테르가 폭주하게 되고 이들 셋을 과거 신들이 함께 했던 대륙 깊숙한 곳에 봉인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이곳을 '죽음의 땅'이라 명명한다.

 

1000

비올라케아의 형성

 

문명의 씨앗을 가지고 있던 인류는 다시금 화려한 제국과 왕국을 건설했다.  

 

넓은 대륙 어디에도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강력한 왕과 제후들은 서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끝없는 경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비올라케아(Violacea), 스트라타비스타 내부에서 소장파 신진세력이 등장한 것이

이 때이다. 

 

비올라케아는 문명을 통제하고, 역사를 조종한다라는 뿌리깊은 정책에 반발, 더 이상

신들의 귀환을 바라는 것은 무의미하며 이제는 인류가 스스로 완전한 자립의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미래는 이제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될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움직임을 용납할 리가 없는 스트라타비스타는 암살과 협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올라케아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비올라케아 역시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스트라타비스타에서 벗어나려 했다.

 

1285

오포루토 

- 카베자 드 베카의

신항로 탐사 

 

여행가 카베자 드 베카가 신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오포루토에 알렸다.  

 

당시의 국왕은 정치나 경제에 무지한 남자로 왕권의 실세도 그의 조카인 카를로스 대공에게 있었다.  

 

신대륙에 대한 이야기는 반쯤은 농담거리로 자주 이야기 되곤 했는데, 그 이야기는 농담처럼 카를로스 대공에게도 전해졌다.  

 

대공은 국왕인 삼촌을 조종할 정도로 정보에 밝고 주변 통제 능력이 좋았다.

 

그는 이 이야기를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혹시라도 바다 건너에 세상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대륙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그러한 주장들은 다른 왕들의 기록에도 몇 번쯤 반복되었고, 만약 진실로 건너편의

대륙이 있다면 앞으로는 그 대륙을 어떻게 손에 넣는가, 그 대륙과의 관계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는가가 국가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는 급히 그의 '손들'을 움직여서 카베자 드 베카를 성으로 불러 들인다.

 

그는 카베자 드 베카에게 이것은 국부와 관련된 중요한 부분이고, 그 탐사는 당연히

당신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맞장구 쳐 그를 신대륙 탐사대로 보낸다.


그가 비밀리에 건조된 새 배를 타고, 어둠바다를 지나갈 때 왕은 그의 책들을 슬그머니

거둬들인다.


곧 세상은 잠잠해졌고, 신대륙에 대한 이야기도 잊혀져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카베자 드 베카가 비밀리에 신대륙에서 돌아와 첫 탐사의 기록을 전달하고, 카를로스

대공에게 그 결과를 알렸다.


결과는 왕들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카베자 드 베카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일을 하고도 역사에서 그렇게 말끔하게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 함에도 그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전하지 않는다.


카베자 드 베카가 살아 돌아와 무엇인가를 그에게 전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

대공은 이후 신대륙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다른 꿈들을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비밀은 완전히 묻혀 버렸다.

 

 

 
구 개척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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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오르페시아력

주요사건

 상세

1461

오포루토 - 

질베르토 그라나도

출생 

 

에스파다 가문의 집사이자 그라나도의 장남으로 질베르토 그라나도가 태어났다.

 

질베르토 그라나도는 페루초 에스파다보다 세살이 많았다.  

 

오랫동안 가문을 섬겨온 집사에 대한 믿음은 질베르토 그라나도에게까지 이어져

에스파다의 아버지는 그라나도를 그의 아들과 다름없이 대했고, 질베르토 역시

그 대가로 페루초의 옆을 죽을 때까지 지켰다.

 

1464

오포루토 -

페루초 에스파다 출생

 

오포루토 남부 카나노르(Cananor) 지방영주의 장남으로 페루초 에스파다가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대에 무공을 떨쳐서 남부의 검으로 불렸으며, 국왕 디니스10세가

새로운 성 에스파다(Espada)를 내렸다.


왕의 권위가 떨어진 시대에, 에스파다 가문의 위세는 예전만 못했지만, 올곧은 기상으로 세력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페루초 에스파다의 어머니는 본래 오포루토 왕가 출신으로, 그 자존심이 대단한 여인

이었다.


본래 원치 않은 결혼을 한 어머니는 출산을 핑계로 수도(친정)로 올라온 후 죽을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병에 걸려 둘째를 낳는 중에 사망하였으며, 그때 페루초 에스파다의

나이는 10살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온 에스파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난다.


그의 어머니가 늘상 하던 말과는 달리 아버지는 매우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으며 늘 꿈에 그리던 이상향에 가까운 남자였다.


그는 말수가 적고, 사색에 쉽게 빠지는 사람이었지만 아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거나 함께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고, 쉽게 표현하지는 않아도 아들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였다.

 

왕실 가족들과 함께 자라며 고급 교육을 받은 페루초 에스파다가 실전에 대한 감각을

익힌 것은 이때였고, 미래의 페루초 에스파다는 이때에야 그 기반을 완전히 했다.

 
그는 서재의 책들을 열정적으로 읽었으며 이때에 아마도 신대륙의 존재를 처음 언급한카베자 드 베카의 책을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1480

오포루토 -

페루초와 질베르토,

오포루토 해군사관

으로 임관

 

에스파다와 그라나도는 말이 상당히 잘 통해서 함께 해군 사관학교로 진학하여, 16세에 에스파다는 장교로 그라나도는 부관으로 임관하게 된다.

 

그들이 초반에 맡은 임무는 근해의 해적을 소탕하는 일이었으며, 그들의 적성에도 꽤

잘 맞는 일이었다.

 

그들은 너무 빠르지 않으면서도 착실하게 무공을 세우며 남해 근방에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1483

오르페시아 - 

신항로 개척령

 

오포루토는 남쪽 바다를 지배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중개무역이 가능했으나 타르가인들에게서 수입하는 동양의 비단, 향신료, 고급 문물은 도저히 자체조달이 불가능했다.

 

특히 여왕 트리에스테가 중상주의 정책하에서 사치를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가의

수입품들은 부르는 그대로 값이 되었다.

 

실제로 오포루토 외에도 동양과 직접 무역을 노리는 국가는 여럿 있었다.

 

그러나 바다의 한 쪽은 타르가의 사막으로 막혀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타르가를 지나지

않고 동양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타르가 역시 척박한 땅에서 국제 무역의 카드로 쓸 수 있는 것이 동양과 오르페시아 간의 중계 무역임을 모르는 것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통제가 철저하였다.

 

당시의 항해술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으므로, 타르가를 돌아서 동양으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때 트리에스테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과거의 왕실기록에서 발견한

신대륙의 언급이었다.


결국 그녀의 명으로 비밀리에 동양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정책이

수립된다.

 

1485

오포루토 - 

페루초와 질베르토,

해적 앤 일당 토벌 

 

 

해군장교로 복무하던 페루초와 질베르토는 악명 높은 여해적, 유쾌한 앤을 붙잡는데

성공한다.


유쾌한 앤이란 별명은 역설적으로 잔인한 행동때문에 붙여졌는데, 그녀를 잡으려던

해군을 놀리듯이 죽인 시체를 춤추는 듯한 자세로 늘어놓던 버릇에서 기인했다.

 

해적 전성기의 앤은 특히 오포루토의 보물들을 많이 훔쳤고, 더욱이 그녀는 오포루토와 앙숙지간인 베스파뇰라의 어촌 출신이었다.


그녀와 내연의 관계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어쨌든 앤 토벌의 공로로 에스파다는 중앙에

진출하게 된다.

 

1487

오포루토 -

페루초와 질베르토,

신대륙 발견

 

오포루토의 여왕 트리에스테는 어렸을 적부터 많은 왕실의 기록들을 읽고 공부해 왔다.  

그녀는 오랜 혼란의 왕실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를 구분하는 방법, 무엇 때문에 진실을 감추어야 하는지 또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 조상의 기록에서 진실을 찾아 내었고 신대륙이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졌다.  

그녀의 손들은 카베자 드 베카가 가지고 있었던 배의 도면을 일부 구했고, 그것을 적용시킨 배도 가지고 있었다.


훈련된 선원들도 준비했으나 한가지 부족한 것은 바로 신대륙을 발견해 낼 영웅이었다.


그 때 젊은 페루초 에스파다가 나타났다. 그는 왕실 가족의 일원이기도 했고, 오래된

가문의 계승자이기도 했으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모까지 갖추었다.

 

또한 상황도 좋았다. 유쾌한 앤은 남쪽과 서쪽의 여러 바다를 다녔고, 암흑 바다 가까운 곳에 있는 무인도에도 자주 들렀다고 전해 주었다.

 

그녀의 보물은 그런 섬 중 일부에 숨겨져 있을 것이 확실했고. 국가를 위해 그것을 가져다 줄 사람이 필요했다.

 

마침내 그녀는 다수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 '앤'에게서 신대륙에 대한 진술을 받아냈고, 결국 페루초 에스파다에게 암흑 바다로의 항행을 명령한다. 

 

그리고 페루초 에스파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암흑바다를 건너는 일은 결코 순탄치 않아 오포루토를 출발했던 12척의 배 중, 페루초 에스파다와 질베르토 그라나도가 선장을

맡았던 2척만이 신대륙을 밟을 수 있었다.


여왕의 명으로 대륙의 이름은 두 사람의 공을 기리기 위해 '그라나도 에스파다'로

정해진다.


또한, 평민이었던 질베르토 그라나도는 페루초 에스파다를 도와 신대륙을 발견한 공으로 작위를 받았다.

 

1488

오포루토 -

신대륙 2차 탐사,

포르토벨로 건설

 

페루초 에스파다가 이끄는 2차 탐사대가 신대륙에 도착하여 재확인한 결과 신대륙은 동양의 땅도 아니며 원주민도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신대륙의 진기한 동식물과 풍부한 물산은 오포루토에게 카타이 이상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오포루토 전역은 신대륙 개발의 열기에 휩싸였다.


오르페시아 변두리의 2등국가로 핍박 받아오던 오포루토는 공식적으로 신대륙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곧 오포루토는 거국적으로 신대륙 개척 사업을 시작, 포르토 벨로에 이주민을 위한 항구를 건설한다.


재산은 가지고 있으나 작위를 받을 수 없던 평민들이 오포루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땅(La prontera)'으로의 이주를 시작했다.

 

오르페시아 - 

신대륙 개척의

도전과 실패 

 

신대륙을 발견 소식을 들은 오르페시아 대륙의 강국들은 소국 오포루토가 신대륙을 차지한다는 것에 반대, 차례차례 정복 함대를 내보냈으나 다들 암흑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침몰하고 말았다.

 

간신히 암흑 바다를 건넌 배들은 신대륙에 상주시켰던 오포루토의 군함에 침몰당했다.

 

페루초의 항해를 바탕으로 오포루토의 해양 기술은 동시대의 것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으로 발전했고 그들은 그야말로 오르페시아 굴지의 해양 왕국으로 거듭났다.

 

1489

오포루토 - 

페루초의 제3문명

발견

 

페루초는 본국으로부터 금광탐사의 구실로 대규모의 3차 탐험대를 지원받아 원주민 전설의 실체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탐사인원을 희생시켜야 했지만 그가 알게 된 사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제3문명 이전의 고대문명은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달성하고 있었으며, 그 핵심 기술로 지,수,화,풍,신인의 다섯가지 원소를 활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고대의 신과 인간의 혼혈로 태어난 신인 중 가장 신의 혈통을 가깝게 갖고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5번째 원소의 힘을 현재 갖고 있는 사람이 하만이라는 사실이었다.

 

일개 탐험가를 넘어 더욱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했던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었으나, 점차 그것이 헛된 꿈이 아닌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탐사대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모두 사고나 마물의 습격을 가장하여 제거, 비밀을 유지했다.

 

오르페시아 - 

베스파뇰라&타르가

불가침 조약

 

타르가의 지원을 받던 도시 국가 나스르가 베스파뇰라에 의해 멸망.
나스르 왕국의 오르페시아 대륙에서 타르가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결국, 베스파뇰라 - 타르가 양 국가는 휴전.
더 이상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1490

오포루토 -

코임브라 건설

 

신대륙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고자 몰려드는 이주민 때문에 포르토 벨로는 포화 상태가 되어 항구로서의 기능이 힘들게 되었다.  

 

오포루토는 포르토 벨로를 대체하기 위해 첫 정착촌인 코임브라에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492

베스파뇰라 - 

산초 4세 즉위 

 

베스파뇰라 국왕 펠리페 2세가 낙마 사고로 서거했다.
그러나 왕자가 너무 어린 관계로 왕위는 선왕의 동생이 차지하여 산초4세로 즉위했다.  

 

선왕의 왕자는 펠리페의 이름을 잇고 대공에 봉해졌다.

 

1494

오르페시아 - 

오포루토&베스파뇰라 합병

 

오포루토의 국운을 걸고 진행한 신대륙 개발은 처음엔 사뭇 순조로웠다.


신대륙에서만 나는 특이한 광물들과 질 좋은 석재, 아직 누구도 손댄 적 없는 금은광산이 오포루토를 열광케 했다.


그러나, 신대륙의 산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산업인프라를 세워야 했고 그를 위해 오포루토는 무리한 국채 발행을 시작했다.

 

또한, 신대륙 러쉬에 몰린 사람들로 신대륙에만 비이상적일 정도로 국력이 집중되었고

(한 때, 오포루토의 성인 남자 중 9할이 선원이나 신대륙 개발에 종사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로 인해 본국 1차 산업의 기반이 흔들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신대륙의 개발만 완료되면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믿었지만 애석하게도 개발의 결실이 나오기도 전에 오포루토라는 국가의 근간이 흔들려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신대륙과 오포루토의 해양 자산에 눈독을 들이던 베스파뇰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포루토의 국채 탕감을 조건으로 제안된 합병은 두 왕가의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베스파뇰라 왕 산초4세와 오포루토 여왕 트리에스테는 미혼이거나 배우자와 사별하고 있었다.


특히 다행이었던 것은 오포루토와 베스파뇰라가 시조를 같이하던 국가였다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같은 시조에서 갈라져 나왔고 문화 기반이 같은 두 나라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한 나라로 융화될 수 있었다.

 

신 베스파뇰라의 등장은 오르페시아의 세력 균형에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구 오포루토 계 이민자의 반발을 막기 위해, 베스파뇰라는 '페루초 에스파다'를 신대륙 총독으로 임명. 베스파뇰라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495

베스파뇰라 - 

코임브라항 1차 완공 

 

포르토 벨로를 대신할 코임브라항이 1차 완공되어 구대륙과 신대륙을 이어주는 새로운 관문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1497 에스페란자 공주 탄생

 

베스파뇰라와 오포루토 합병의 결실로 에스페란자 공주가 탄생했다. 

 

베스파뇰라 - 

리볼도외 건설 

 

신대륙 중부 개척의 본거지로 리볼도외 건설이 시작되었다.

 

1498

베스파뇰라 - 

페루초 삼거리 건설 

 

리볼도외와 코임브라를 잇기 위해 페루초 삼거리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베스파뇰라 - 

페루초 귀국과

스트라타비스타의

접근

 

신대륙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 총독 페루초는 본국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기 위해 잠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또한 비밀리에 얻은 딸의 양육을 도와줄 사람도 필요했다. 그는 본가의 하인들을 모두 해고했으나 충실하고 입이 무거운 젊은 하녀, 레오노라만은 딸의 양육을 위해 남겨 두었다.

 

이후 그의 딸은 레오노라의 보살핌하에 자라나게 된다. 

 

한편 베스파뇰라의 실력자 펠리페 대공과 스트라타비스타가 그에게 접근해 조직에 몸담을 것을 권유한다.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느낀 페루초는 기꺼이 스트라타비스타와 손을 잡지만 향후 10인귀족으로 일컬어지는 펠리페 대공의 측근 제후의 자리를 받는 것은 거절한다.

 

그는 이후의 고대 문명 탐사과정에서 이미 스트라타비스타가 갖고 있던 지식과 막대한 자금력, 조직의 지원을 받는다.


이때부터 부관 질베르토 그라나도는 페루초에게 뭔가 비밀이 생겼음을 눈치채고 의심을 키우기 시작한다.

 

1499

베스파뇰라 - 

페루초와 노비아 

 

노비아는 베스파뇰라 대상인의 딸로 어린시절부터 사람을 부리는데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그런 그녀가 사랑에 빠져 들게 된 것은 왕실 주최의 연회에서 대모험가이자 신대륙공인 페루초를 만났을 때였다. 

 

그녀는 희끗해지기 시작하는 페루초의 수염과 머리카락, 신대륙공의 이름이 주는 여유와 근엄함에 도저히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시 페루초는 비밀리에 신들의 유산을 찾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한 눈에 그녀의 이용가치를 알아본 페루초는 단번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의 탐사를 후원했다.


하지만 신대륙으로 돌아간 페루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쳐 정보를 캐낸 끝에 그에게 숨겨진 딸과 하녀를 정부로 둔 것 같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10대의 설레이는 첫사랑은 단번에 지옥불과도 같은 분노와 증오로 바뀌고, 때마침 접근한 펠리페 대공의 제안을 받아들여 페루초에 대한 복수를 용인하는 대가로 10인귀족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펠리페의 측근이던 몬토로를 알게 되어 연인이자 오른팔로 삼았다.

 

1510

베스파뇰라 - 

에스페란자 여왕 즉위 

 

베스파뇰라 국왕 산초 4세가 사망하고 후계로 유일 비속인 에스페란자 공주가 여왕으로 즉위했다. 

 

펠리페 대공 일파는 정당한 계승권을 주장하며 극심하게 반발했으나 오포루토 유민의 민심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밀려났다.


에스페란자 여왕 즉위와 동시에 코임브라 2차 항구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 때 신대륙의 마물들이 너무 기승을 부리는 탓에 페루초 삼거리의 건설은 일시 중지되었다.


왕위를 힘으로 빼았겼다고 생각한 펠리페 대공은 언젠가 복수를 다짐하며 힘이 될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특히 대륙 최고의 마법사인 알폰소 에르난데즈가 자처하여 그의 막하로 들어오고, 스승이 된 에르난데즈의 안배에 따라 후에 10인귀족이라 불린 강력한 제후들을 하나둘씩 포섭하기 시작했다.

 

1513

베스파뇰라 - 

몬토로, 남작 작위

수여 

 

몬토로는 원래 펠리페 대공 가문의 가신집안 출신이며 그다지 높은 지위를 갖고 있진 않았다.

 

펠리페의 마음을 잘 맞추어 주었던 탓에 측근으로 발탁되었고, 에르난데즈의 생각과 행동을 어깨너머로 보며 음모를 꾸미고 상황을 조종하는 방법을 배웠다.

 

페루초에게 배신당한 노비아가 펠리페 대공 일파에 합류하자 마음의 빈자리를 파고 들어가 내연관계를 이루는 것에 성공했다.

 

사교계에서는 10대후반의 젊은 미남자가 성공을 위해 연상의 마녀에게 몸을 팔았다라는 평가가 다분했으나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에르난데즈는 노비아를 조종하기 위해 그를 이용하고자 했고, 에르난데즈의 추천으로 몬토로는 전격적으로 남작위를 받아 10인귀족의 대열에 합류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를 즐겨 꾸미는 탓에 '작은 에르난데즈'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신대륙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자신이 대륙공 페루초를 뛰어 넘어 신대륙을 차지하고 싶다는 야망이 꿈틀거렸고, 점차 노골적으로 자신의 나라를 갖고자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편 노비아를 어릴 때부터 보필하여 10인귀족의 자리에까지 오른 코르테스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으며, 에르난데즈는 그것이 몬토로의 보잘 것 없는 배경에 대한 컴플렉스로 분석하고 있다.

 

1514

베스파뇰라 - 

토르쉐 박사 10인귀족영입 

 

일리에의 젊은 천재과학자인 페르난도 토르쉐 박사가 에르난데즈의 설득으로 펠리페 대공의 막하에 합류하여 10인귀족의 일원이 되었다.

 

1519

오르페시아 - 

3년 전쟁 발발 

 

합병 이후, 신대륙의 풍부한 물산과 오포루토에 해군력에 힘입어 무서운 기세로 국력을 신장시킨 베스파뇰라.  

 

그리고 오랫동안 오르페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섬나라 브리스티아. 신구 두 세력은 마침내 오르페시아의 패권을 두고 충돌하고 말았다.  

 

노회한 브리스티아 국왕과, 24세의 소녀 여왕 에스페란자의 대결이기도 했다.

 

1520

베스파뇰라&일리에 

상호방위조약 체결 

 

일리에가 베스파뇰라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브리스티아에 선전포고.

 

일방적인 브리스티아의 승리를 점치던 오르페시아인들의 예상을 무색케 하고 전황은 백중세로 돌아섰다.

 

대륙 지식 사회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대마법사 에르난데즈의 교섭력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으며, 막후에서 활약한 10인귀족과 펠리페 대공의 명성이 대륙 전체에 크게 떨쳐졌다.

 

1521

오르페시아 - 

발레아레스 해전과

베스파뇰라의 승리 

 

전쟁 내내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점하던 브리스티아와 힘겨운 항전을 거듭하던 베스파뇰라의 주력함대는 1521년 베스파뇰라 북부의 발레아레스 앞바다에서 양국의 운명을 건 일전을 벌였다.

 

몇 배의 전력을 보유한 오르페시아 최강의 브리스티아 함대는 상선과 어선을 급히 끌어모은 베스파뇰라 함대와 혈전을 치른 끝에 양 함대는 서로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전투의 결과만 놓고 보면 무승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브리스티아가 잃은 전력이 훨씬 컸던 데다가 브리스티아의 본토를 방위하는 육군 전력은 해군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브리스티아는 최고의 갑옷를 잃고 무장해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전투에서 토르쉐 박사가 개발한 대량살상 무기가 다수 선 보였으며, 브리스티아의 생존자들은 오타이트라는 물질의 힘을 이용한 기술과 비인도적인 생물병기의 실전사용이 자행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묻혀졌다.


브리스티아는 자랑하던 무적 함대를 모두 잃은 후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베스파뇰라는 발레아레스 해전 이후, 일리에와 타르가를 끌어들여 브리스티아를 고립시킨 후 막강한 육상 전력을 동원해 브리스티아에 상륙, 본격적인 본토 공략에 들어갔고 며칠만에 수도를 함락당한 브리스티아 왕실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전쟁에 승리한 베스파뇰라는 브리스티아의 잠재력을 두려워해 잔혹한 탄압 정책을 잇달아 펼쳤다.

 

브리스티아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렸고 국가 재건의 중추가 될 수 있는 브리스티아의 엘리트들을 학살, 거기에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해상 봉쇄를 풀지 않았다.

 

고립된 브리스티아는 삼류 국가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무자비한 패권주의 정책으로 브리스티아의 척추를 꺾은 베스파뇰라는 명실상부한 오르페시아의 패자가 되었다." 

 

오르페시아 - 

브리스티아 지식인

대숙청 

 

3년전쟁에서 승리한 베스파뇰라는 브리스티아의 경쟁력을 말살하기 위해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잡아 가두었다.  

 

저명한 생물학자였던 모스테인 박사 역시 사소한 죄목으로 잡혀와 먼 신대륙의 자캥 감옥에 수용되었으며 그곳에서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던가 아니면 연구에 협력하라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죽기 싫었던 그는 몬토로가 주도한 실험에 협력했지만, 마지막에 효용가치가 사라지자 그 역시 실험체가 되어 강제로 언데드화되었다.

 

 

 
신 개척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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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오르페시아력

주요사건

 상세

1522

베스파뇰라 - 

레콩키스타 정책 발표  

 

 

기나긴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도 군인은 남는다.

 

전후 베스파뇰라에는 넘쳐나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전쟁 귀족, 또 하나는 그들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소요 사태.

 

전쟁 귀족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투쟁심은 수많은 사회문제를 야기시켰고, 나아가서는 베스파뇰라와 사회 전반의 안정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대두되었다. 

 

그 때 젊은 에스페란자 여왕이 한가지 정책을 들고 나왔다. 레콩키스타(= 재정복) 정책.

 

3년 전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흘했던 신대륙을 다시 총력을 기울여 개발하자! 는 것이 레콩키스타 정책의 요지이다.

 

그러나 실상 그 이면에는 '전쟁귀족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밖으로 돌려 내치의 안정을 꾀하고, 동시에 신대륙 개발도 도모하자'는 의도가 숨어있다.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각종 소요를 일으키던 전쟁 귀족들은 이 레콩키스타 정책에 구미를 당겨했고, 신분에 상관없이 무한정의 기회가 보장되는 새로운 신천지를 꿈꾸는 이들도 신대륙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신대륙 그라나도 에스파다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523

베스파뇰라/당인 -

오타이트 전쟁 발발

 

오르페시아와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다고 판단한 10인귀족은 여왕에게 알리지 않은채 동방으로 진출하여 당인이라는 국가를 알게된다.

 

그들은 당인에는 정식무역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본국에는 보고를 하지않는 방식으로 몰래 밀수를 하여 이익을 남기고 있었다.

 

비옥한 옥토와 특산물에 매력을 느낀 귀족들은 점차 당인을 귀속 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그들은 오타이트라고 불리는 물질을 가공하여 사람을 환각 상태에 빠뜨리고, 중독성이 강한 약품으로 만든 후 당인의 국민들에게 퍼뜨려 피폐하게 만든다. 

 

국력이 쇠약해지며 각종 중독으로 국민들이 쓰러지는 것을 알게 된 당인의 왕은 베스파뇰라 귀족들과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소수의 병력으로 당인의 대군이 패퇴하자, 당황한 왕은 정식으로 베스파뇰라에 평화사절을 급파하게 된다.

 

1524

일리에/타르가 - 

일리에&타르가

2차 대전쟁 발발

 

 

타르가의 황태자, '사무엘 타르가'가 일리에의 국경 지대에서 피살된 채 발견되자 술탄은 분노하여 일리에에 선전포고, '일리에-타르가 2차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또 다시 이루어진 기습이었지만 지난번과는 달랐다.

 

타르가는 지난 전쟁에서 패전을 교훈으로 삼아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훈련을 마쳤고, 일리에 군은 그렇지 못한 실정.  

 

설상가상으로 일리에는 귀족들간의 의견 분열로 인해 국력이 집중되지 못한 상황. 

 

단 3일 만에 프리실라 대평원이 함락되고, 베델 영지까지 초토화된다. 단 5일만에 황도 일리시아까지 포위, 함락 위기에 들어서게 되는 국가 존폐의 위기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리에의 국론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으며 일리시아 성문이 부서지려는 순간 출병한 베델 공작과 베르니에 공작의  두 기사단이 아니었다면 일리에는 세계 지도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검은 늑대라 불리운 베델의 기사단과 베르니에 공작가의 장미 기사단은 고전분투 끝에 타르가 정예군을 일리시아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고, 기세를 몰아 여러 국지전에서 승리 타르가 군을 일리에 국토에서 쫓아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전쟁은 장기화 되었고, 오랜 전쟁으로 국가 자체가 황폐화되자 본래 목적조차 상실해가던 두 국가는 '일리에 - 타르' 휴전 협정을 맺고 휴전 단계로 돌입한다.

 

베스파뇰라 - 대이주

 

에스페란자 여왕의 '레콩키스타 정책'에 의거하여 베스파뇰라의 전쟁 귀족들이 대거 신대륙으로 이주를 시작

 

1526

베스파뇰라 -

기간떼 군도 개발

 

코임브라 동남쪽에 위치한 기간떼 군도.

신대륙 동부해안의 섬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대륙공 페루초 에스파다가 이 군도에 기간떼(Gigante ? 거대한, 거인, 거인의)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과거 코임브라가 건설되기 전에는 포르토 벨로와 함께 항구로 이용되고 있던 기간떼 섬이지만 현재는 항구로서의 기능은 하고 있지 않다.

 

빼어난 기간떼의 풍경은 개척에 지친 이들이 휴식을 찾아 이곳으로 떠나오게 만들었고
기간떼의 휴양지로서의 시장성을 간파한 본국과 척식주식회사는 기간떼를 휴양지로 개발하기 시작한다.

 

화산섬이며 강력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어 쉽게 접근이 불가능한 불의 섬을 제외한 두 섬은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대부분의 개척자들이 이곳에서 느긋한 휴가를 즐기기 위해 오지만 간혹 '용암의 여왕'을 찾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일리에 - 

내전, '피의 베르니에' 

 

중앙 귀족 베델과 베르니에 공작의 내전. 내전이라고 칭하지만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으며, 베르니에 공작가의 손을 들어주는 귀족은 없었다. 

 

베델은 결국 승리했고, 베르니에 공작가를 멸하려 했으나 후대 '은빛 섬광'이라 불리우는 헤르베르트의 소녀에게 저지 당한다. 

 

결국 황제의 승인을 받은 집정관의 판결로 베델 공작은 쫓겨났고, 일리에&타르가 전쟁의 전쟁 영웅 '몽블란트 베델'이 베델의 새로운 가주로 등극한다.

 

1527

베스파뇰라 -

페소 칙령

 

에스페란자 여왕의 레콩키스타 정책의 일환으로 본국의 화폐를 신대륙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공평한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자국민의 신대륙 정착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려는 정책.

 

베스파뇰라가 오포루토와 일리에를 실질적으로 통합함으로서 점차 페소가 구대륙의 통합 화폐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구대륙의 자국민들이 신대륙에 이주할 때 환전의 어려움을 해소시키고자 함이니, 자국민의 신대륙 진출이 더욱 활발해 질 수 있도록...'라는 내용의 칙령이 발표되어 이제 신대륙에서도 구대륙의 통합화폐인 페소가 통용되게 되었다." 

 

1528

베스파뇰라 - 

제 3문명 발견  

 

 

에밀리아는 검붉은 지하수로에서 아버지 로렌초 박사의 흔적을 발견하고 결국 지하수로 너머 제3문명의 에라크 마을을 찾아내고야 만다. 

 

제3문명과의 접촉사실은 신대륙뿐 아니라 오르페시아에도 전해져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베스파뇰라 -
신대륙 척식 주립회사와 에라크의 통상교섭

 

개척자들에 의해 제3문명 에라크 마을이 발견되자 신대륙 척식 회사는 베스파뇰라 본국의 방침에 따라 통상교섭을 실시, 막대한 유무형의 원조를 제공하는 대가로 상인 배치 권한 등 다수의 통상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한다.

 

베스파뇰라 -
아르센 서커스단 

신대륙 순회공연" 

 

펠리페 대공과 에르난데즈는 제3문명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당황한다.

 

그들이 예상하고 있던 것 보다 일이 급진전되고 있었던 것이다.  

손들을 보내 조사한 결과 로렌초의 딸인 에밀리아가 고대 문명과의 접촉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에밀리아를 제거하기 위해 대륙 최고의 서커스단으로 가장하고 있는 최강의 암살 조직 아르센 서커스단을 신대륙에 급파한다.

 

아르센 서커스단은 공주의 배려로 리볼도외 별궁에 자리를 잡고 에밀리아의 암살을 계획하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단장 아르센은 개척가문에 의해 현장에서 절명, 부단장 헬레나는 오슈에 가택연금 된다.

 

1530

베스파뇰라 -
'발레리아 공주 구출'

 

모종의 이유로 자캥 수용소 가장 깊숙한 감옥에 유폐되어 있던 가브리엘라 공중의 쌍둥이 여동생 '발레리아'가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에 의해 구출된다. 

 

스트라타비스타는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발레리아 공주에 대한 신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차단했으며, 신대륙에서는 신대륙의 해방을 위해 움직이는 공화파가 여러가지 부분에서 유리함을 가질 발레리아 공주를 보호하기로 결정한다.

 

1532

베스파뇰라 -
'르네상스' 선포

 

 

베스파뇰라는 신대륙 개척민들의 활동에 있어 본국의 무거운 '과세 정책'이 문제시 되었다고 판단, 스트라타비스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스페란자 여왕은 과감하게 그들의 어려움을 돕고자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에게 부과하던 과세를 대폭 감면하였다.  

 

후대 사람들은 이를 신대륙의 새로운 도약, '르네상스'라고 칭한다.

 

 

 
르네상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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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오르페시아력

주요사건

 상세

1532

베스파뇰라 -
카스티야 발견

 

신대륙 남단을 탐사하던 한 개척 가문에 의해 '카스티야' 지역을 발견,
베스파뇰라는 해당 지역의 탐사를 위해 베스파뇰라 제 2함대를 파견한다. 

 

베스파뇰라 -
카스티야 광산 

탐사 진행 

 

일반 평범한 광산인줄로만 알고 탐사를 진행하던 탐사대는 광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을 보며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게 되고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의 지원을 받아
무사히 탐사를 마친다. 

 

베스파뇰라 -
카스티야 유적 

탐사 진행 

 

광산 너머에 있던 곳은 폐허가 된 과거의 마을을 보는 듯 했다. 

 

폐허를 거쳐 내부를 깊숙히 탐사를 진행해본 결과, 이곳은 과거에 번영했던 어느 왕국일 것이라 추측한다. 

 

거대한 유적 탐사를 끝마친 결과, 이 유적은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장막과도 같다라는 결과가 추론되었다. 

 

베스파뇰라 -
카스티야 혼돈의 탑 

탐사 진행 

 

유적을 지나 그들이 본 것은 장황한 '고대 신전' 이었다. 살아있는 지성체라고는 없었지만 그들의 과거 문명이 얼마나 발전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신전의 끝에는 하늘로 높게 치솟아 있는 거대한 탑이 있었다. 

 

탑에는 현재의 기술력과 마법으로 구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고대의 마법과 과학이 집대성된 피조물들이 가득했고, 그 곳의 끝까지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자는 없었다고 한다. 

 

1533

베스파뇰라 -
신대륙  개척 가문

'바이런' 입항 허가

 

세상의 끝이라 불리웠던 섬, '바이런'으로 신대륙 개척민들의 입항을 허가한다는 에스페란자 여왕의 공문이 내려왔다. 

 

많은 반대에도 무릅 쓰고 에스페란자 여왕은 '신대륙 개척민들도 나의 백성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바이런은 본국과 신대륙을 잇는 교두보로서 개척민들에게 개항되었다.

 

베스파뇰라 -
십인귀족 몬토로 

'사망' 

 

베스파뇰라의 십인 귀족, '몬토로'가 의문의 암살자로부터 살해 당한다.

 

베스파뇰라 -
십인귀족 해체

 

베스파뇰라의 십인 귀족으로서 이름을 떨치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비올라케아에 합류 또는 사망으로 인해 이탈하며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자 펠리페 대공은 십인 귀족을 해체, '신 십인 귀족'이라는 명목 하에 새 귀족들을 선출한다. 

 

현재까지 신 십인 귀족으로 알려진 자 : 펠리페 대공, 에르난데스 후작, 베아트리체, 트루먼 박사, 유르겐 푸르홀렌, 레놀드 감찰관, 반, 레오나 베르니에 

 

1534

브리스티아 -
'신대륙 입항 허가'

 

몬토로 사망 후 베스파뇰라 국내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브리스티아의 신임 총독 '케스 키엘체'는 브리스티아의 신대륙 개척민 입항을 허가한다. 

 

이례적인 행동에 많은 키엘체 보수파, 베스파뇰라 귀족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특유의 인사 수완을 통해 무사히 공문을 신대륙에 발송한다. 

 

브리스티아 -
'키엘체 연구소 건립'

 

신임 총독 '케스 키엘체'는 '진보'는 '브리스티아의 새로운 빛'이 될 것이라며 일리에 출신의 천재 박사 '마르체티'를 영입하며 키엘체 연구소를 건립한다.  

 

현재 키엘체 연구소에서는  '자동차', '비행기', '비공정'을 비롯한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1535

브리스티아 -
'독립 전쟁'

 

3년 전쟁 이후, 베스파뇰라에 모든 국정을 빼앗긴 브리스티아가 오랫 동안 준비해온 '독립 전쟁'을 개시한다. 

 

이를 대비하여 파견된 신 십인 귀족 '레놀드 감찰관'과 '블러드 네이비'는 브리스티아 독립군과 교전하지만,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과 과거 3년 전쟁에서 활약한 '브리스티아 용사'들의 투혼을 바탕으로 레놀드 감찰관은 전사하고, 블러드 네이비는 많은 사상자를 내며 패전한다. 

 

이에 스트라타비스타는 브리스티아 독립 전쟁을 도운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도 반역자로 규정 짓고  토벌을 개시해야 된다고 언급했지만 여왕은  '그들도 자신의 가치와 선택을 존중 받을 한 명의 사람이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또한 브리스티아에 대한 식민 정책 또한 근본부터 잘못되었으며, 그들의 자유를 인정한다. 물론 그들이 베스파뇰라의 통제에서 벗어날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이라는 말과 함께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여왕은 새로운 블러드 네이비 감찰관을 파견했고, 키엘체의 총독도 이빨은 드러냈지만 아직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에 다음 단계를 진행하고자 준비를 시작한다.

 

1536

아르모니아 -
아르모니아 3차 성전

 

오르넬라 사후 지속적으로 아르모니움의 신성한 기운이 약화되자 아비스는 '기억을 먹는 나바스'를 필두로 하여 오랫동안 웅크려왔던 심연의 군대를 출정시킨다. 

 

심연의 군대는 어제의 전우를 오늘의 적으로 만들며 지하 주둔지 '아포스타데로'에 맹렬한 공세를 퍼붓는다. 

 

아르모니아 교단측은 외부로 정보가 새어나가 '타국의 개입'과 '민심의 동요'를 억제할 문제를 염두에 두고 해당 사항을 기밀로 봉한다. 

 

때마침 도착한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르모니아 3차 성전에 합류하게 되고 희망 없는 항전을 벌이고 있던 아포스타데로의 용사들은 다시 한번 전의를 불태운다. 

 

아르모니아 -
최초의 악마,  

오스큐라스 부활 

 

역사가 쓰여지기 이전, 과거 '1차 아르모니아 성전' 때 수 많은 고위 사제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봉인된 최초의 악마 '오스큐라스'가  메멘토모리 '반'의 손에 의해 부활했다. 

 

반은 신의 무기라 불리우는 '오르덴의 창'과 함께 오스큐라스와 함께 소멸을 시도했으나, 개척 가문에 의해 실패하지만 그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오스큐라스를 소멸시키는데 성공한다. 

 

최초의 악마가 사라짐에 따라 '심연'은 지배권을 놓고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나바스는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르모니아 -
아르모니아 승전 용사 수여

 

아르모니아 3차 성전이 아르모니아 측의 승리로 돌아가며, 심연의 무리는 패퇴하여 본래의 세계로 회귀하였다. 

 

이에 현 교황 루디오 2세는 지하 카타콤에서 심연과의 싸움에서 고군분투한 개척 가문과 용사들에게 아르모니아 최고위 용사라 불리는 '아르모니아 승전 용사' 훈장을 수여한다. 

 

베스파뇰라 -
'레오나 베르니에'  

바이런 파견 

 

브리스티아 독립 전쟁에도 불구하고, 스트라타비스타는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여왕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이에 에르난데스 후작은 구대륙에서 요인 암살 및 스트라타비스타 최고의 여전사라고 칭송되는 '레오나 베르니에'를 바이런 '펠로페 성'의 새 성주로 임명한다. 

 

베스파뇰라 -
'장미 공작'의 부활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장미 공작, '레오나 베르니에'는 스스로를 '에스페란자 여왕'의 대리인이라 밝히며, 비올라케아에 합류한다. 

 

베스파뇰라 - 

'되찾은 시간' 

 

에르난데스 후작은 비올라케아와 배신자 '레오나 베르니에', 그리고 신대륙의 개척 가문을 없애고자 바이런 지하에 숨겨져 있던 신들의 유산 중 하나인 '되찾은 시간'을 가동시킨다.

 

되찾은 시간으로 이들 모두를 살해하려 했으나 신의 안배였는지 바이런의 모든 시간은 장미 공작이 바이런으로 들어오기 이전으로 돌아가버렸고, 장미 공작은 대부분의 힘을 잃게 된다.  

 

장미 공작은 스트라타비스타의 움직임 감시와 오르페시아의 정세 파악 등을 비올라케아에게 협조해주기로 하였고, 비올라케아는 신인의 보호와 신대륙의 스트라타비스타 축출을 통해 에스페란자 여왕에게 봉사하겠다며 공동 전선을 구축한다.

 

 

 
심포니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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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오르페시아력

주요사건

 상세

1538

일리에 -

'진보와 안정' 

 

일리에는 국가의 진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된다는 '에보라'와 국가는 안정을 바탕으로 성장해나간다는 '파트리키온'으로 군벌이 나뉘게 된다.


군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교전 중이었으며 '국가'가 갈라짐을 염려한 현 집정관 '알키온 레무르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장미 공작'에게 밀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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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16-09-05 오후 4:53:58
최종 편집자 :
그라나도 에스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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