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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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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가이드 개요

브리스티아의 상세 연대기

대전쟁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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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브리스티아력

(오르페시아)

주요사건

 상세

0

(450)

영광의 브리스티아

 

북방의 섬나라 '앵글'은 대륙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어갔다. 

 

부족 및 연맹 체제의 국가였던 앵글은 바다 건너 '사막의 타르가'의 정복 전쟁에 맞서며
단순한 부족 체제로는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판단, 여러 부족들이 모여 왕을 선출했고, 왕은 당시 보병으로 일괄된 전투 시스템을 말을 탄 전사, '기병 전법'을 최초로 사용하며 타르가의 정복 전쟁을 저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을 '사자왕'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가문 이름을 따 '브리스티아'로 국가명을 개정한다. 

 

194

(644)

키엘체 가문,

충성 서약

 

브리스티아 최남단의 항구 도시의 수장, 포르토 키엘체는 인근 해안의 해적들을 모두 소탕하며 브리스티아 본토에 이름을 알렸다. 

 

이에 브리스티아 왕실은 포트로 키엘체를 회유, 키엘체 가문의 충성 서약을 받아낸다. 

이후 키엘체 가문은 산하의 해적들을 기용하여 주변 국가들의 무역선을 공격하국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략해적으로서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241~342

(691~792)

브리스티아 -

일리에 100년 전쟁

 

일리에 황태자, '사이러스 일리시아'가 브리스티아 여행 중 피살된 채 발견되었다. 

이에 일리에 황실은 브리스티아에 그 책임을 물었으나 브리스티아 역시 영문을 몰랐기에 회피할 뿐 이었다. 

 

결국 분노한 일리에 황제는 집정관에게 정식으로 전쟁을 요청했고 집정관 역시 황제의 뜻을 따라 일리에는 브리스티아에 선전포고 후 대함선을 띄워 전쟁을 개시한다. 

 

그러나 브리스티아 해군은 강했고, 일리에는 집정관을 위시한 많은 귀족과 지휘관을 잃고 대패했다. 브리스티아는 이에 역공을 시작, 일리에 본토에 상륙한다.  

 

기병 위주의 일리에 기사단은 브리스티아의 석궁 보병 부대 앞에 속수 무책으로 떨어졌고, 급기야 일리에의 패전으로 기우는가 했다.  

 

베르니에 대평원은 황도 일리시아로 향하는 관문과도 같은 곳, 베르니에 대평원이 브리스티아 군에게 점거되면 일리시아 함락은 순식간이었다.  

 

허나 브리스티아 군은 베르니에 대평원을 넘지 못했다. 젊은 나이에 공작위를 받은 다이에나 베르니에 여공작이 이끄 장미 기사단에 패배했기에... 

 

장미 기사단은 하루 동안 베르니에 대평원을 막아서며 브리스티아 군에게 대승했다. 브리스티아 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은 채 본국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장미 기사단은 그 누구도 귀환하지 못했다, 장미 공작마저도... 

 

브리스티아 군은 장미 공작의 용병술과 전술에 감탄하며 다음을 기약하며 본국으로 귀환했다. 

 

이후 약 백 년 가까이 브리스티아와 일리에는 크고 작은 전투를 계속했지만 결국 서로의 숨통을 확실히 끊지 못한 채, 기약 없는 휴전이 시작된다. 

 

835

(1285)

브리스티아 신항로

탐사

 

오포루토의 카베자 드 베카의 신항로 발견에 브리스티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략해적으로 인근 연안에서 악명을 떨치던 드레이크에게 신항로 개척을 위한 지원을 시작한다.  

 

5년 간의 준비를 마친 후 10척의 대함선과 500여명의 선원은 신대륙 탐사를 나섰으나 1년 후 브리스티아로 돌아온 것은 1척의 반파된 함선과 26명의 선원들 뿐이었다. 

 

이후 신항로 개척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구 개척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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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브리스티아력

(오르페시아)

주요사건

 상세

1072

(1521)

3년 전쟁 발발

 

합병 이후, 신대륙의 풍부한 물산과 오포루토에 해군력에 힘입어 무서운 기세로 국력을 신장시킨 베스파뇰라.  

 

그리고 오랫동안 오르페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섬나라 브리스티아. 신구 두 세력은 마침내 오르페시아의 패권을 두고 충돌하고 말았다.  

 

노회한 브리스티아 국왕과, 24세의 소녀 여왕 에스페란자의 대결이기도 했다.

 

베일 대위,

대령으로 진급

 

3년 전쟁 중 많은 지휘관급 장교들이 전사한 탓에 야전에서 전투 중인 지휘관의 공급이 부족하다고 판단, 브리스티아 왕실은 다수의 중견급 장교들을 지휘관급 장교로 진급 시키는 인사를 단행한다. 

 

24세의 베일 역시 대령으로 진급된 사람 중 한 명이다.

 

에두아르도의

생체 실험

 

에두아르도 힝기스는 브리스티아의 특수부대 소위로 첩보임무를 띄고 베스파뇰라에 침투했다.  

 

베스파뇰라를 이끄는 10인귀족을 염탐하던 그는 펠리페 대공의 측근 린든 부대에게 포착되어 추격당한다.

 

휴고 린든의 양자 커트에게 쫓기던 그는 검술로 교전하지만 승부를 가릴 수 없었다.  

 

시가지에서 추격당하던 그는 어린아이를 인질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포기, 도망자의 의기에 감탄한 커트는 사격을 지시하지 않고 생포하려 한다.  

 

뒤쫓아온 휴고 린든은 커트를 크게 나무라고 외딴 절벽에 쫓긴 에두아르도에게 사격을 명령, 에두아르도는 다리에 피탄한 채 바다로 떨어진다. 

 

이후 바닷가에서 의식을 잃은 채 몬토로에게 발견된 에두아르도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군사기밀을 불지 않는다. 몬토로는 그의 정신력을 비웃으며 언데드 군단 양성을 위한 네크로만시 실험재료로 넘겨 버리고 만다.

 

이후 그가 기억도 잃고 언데드화에 실패하자 몬토로는 그만 처분하려 했지만 휴고 린든의 청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다.

 

발레아레스 해전과

베스파뇰라의 승리

 

전쟁 내내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점하던 브리스티아와 힘겨운 항전을 거듭하던 베스파뇰라의 주력함대는  1521년 베스파뇰라 북부의 발레아레스 앞바다에서 양국의 운명을 건 일전을 벌였다.

 

몇 배의 전력을 보유한 오르페시아 최강의 브리스티아 함대는 상선과 어선을 급히 끌어모은 베스파뇰라 함대와 혈전을 치른 끝에 양 함대는 서로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전투의 결과만 놓고 보면 무승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브리스티아가 잃은 전력이 훨씬 컸던 데다가 브리스티아의 본토를 방위하는 육군 전력은 해군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브리스티아는 최고의 갑옷를 잃고 무장해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전투에서 토르쉐 박사가 개발한 대량살상 무기가 다수 선 보였으며, 브리스티아의 생존자들은 오타이트라는 물질의 힘을 이용한 기술과 비인도적인 생물병기의 실전사용이 자행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묻혀졌다.


브리스티아는 자랑하던 무적 함대를 모두 잃은 후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베스파뇰라는 발레아레스 해전 이후, 일리에와 타르가를 끌어들여 브리스티아를 고립시킨 후 막강한 육상 전력을 동원해 브리스티아에 상륙, 본격적인 본토 공략에 들어갔고 며칠만에 수도를 함락당한 브리스티아 왕실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전쟁에 승리한 베스파뇰라는 브리스티아의 잠재력을 두려워해 잔혹한 탄압 정책을 잇달아 펼쳤다.

 

브리스티아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렸고 국가 재건의 중추가 될 수 있는 브리스티아의 엘리트들을 학살, 거기에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해상 봉쇄를 풀지 않았다.

 

고립된 브리스티아는 삼류 국가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무자비한 패권주의 정책으로 브리스티아의 척추를 꺾은 베스파뇰라는 명실상부한 오르페시아의 패자가 되었다.

 

레이몬드 블레어 소령 생포

 

 

베스파뇰라 후방에서 교란 작전을 펼치던 특작부대원 레이몬드 뷸레어 소령이 조국이 항복했다는 소식에 절망, 마지막까지 분전했지만 결국 생포된다. 

 

십인 귀족 몬토로는 그를 실험체로 쓰고 싶다며 펠리페 대공을 통해 그를 빼냈다.

 

올리비아,

코스터 마을 탈출

 

집속 마법포에 죽음의 땅으로 변해 버린 코스터 마을의 한 여자가 탈출에 성공했다.

 

열 두살의 올리비아는 그렇게 마을을 떠났다.

 

브리스티아

지식인 대숙청 

 

 

3년전쟁에서 승리한 베스파뇰라는 브리스티아의 경쟁력을 말살하기 위해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잡아 가두었다.  

 

저명한 생물학자였던 모스테인 박사 역시 사소한 죄목으로 잡혀와 먼 신대륙의 자캥 감옥에 수용되었으며 그곳에서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던가 아니면 연구에 협력하라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죽기 싫었던 그는 몬토로가 주도한 실험에 협력했지만, 마지막에 효용가치가 사라지자 그 역시 실험체가 되어 강제로 언데드화되었다.  

 

많은 지식인이 공개처형 당했고, 키엘체에는 총독부가 건립되었으며 베스파뇰라는 총독부의 총독으로 체르니 키엘체를 임명한다.

 

 

 
신 개척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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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브리스티아력

(오르페시아)

주요사건

 상세

1072

(1522)

가르시아 힝기스, 

신대륙에 밀입국 

 

브리스티아 특수 부대의 소위였던 가르시아 힝기스는 전후 자신의 형이 베스파뇰라 십인 귀족 중 하나인 몬토로 남작에게 죽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군을 제대하고 복수를 위해 몬토로를 쫓아 그라나도 에스파다에 밀입국하는 바람에 브리스티아 군 엘리트들에게 불어닥친 참혹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후일 자신이 속해있던 특수 부대가 자캥에서 잔혹한 인체 실험의 대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조국과 동료, 형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자캥 수용소의 힘을 이용해 언데드 병단을 제작한다.

 

베르넬리, 

신대륙으로 도피 

 

브리스티아 육군에  16세의 나이로 임관하여 정보장교로 근무하던 그레이스 베르넬리는, 수차례의 전투에서 베스파뇰라군이 거둔 불가해한 승리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베스파뇰라군은 이따금씩 중대 이하급의 소수 병력으로 브리스티아의 대부대에 맞서는, 전술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전술을 펼치곤 했는데, 그런 전투의 결과는 언제나 양측의 철저한 전멸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발레아레스 해전이었다. 상선과 고깃배를 긁어모아 급조한 함대가 브리스티아의 무적함대를 궤멸시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발레아레스 해전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진창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발레아레스 해전은 상식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조사는 결말을 내지 못한 채 끝나고야 만다.

 

연합군의 전면적인 본토 침공, 그리고 브리스티아의 항복 선언. 무너지는 조국에 대해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브리스티아의 엘리트 계급을 말살하기 위해 베스파뇰라 군부가 브리스티아 장교단 숙청을 실행했기 때문이었다.

 

그 서늘한 칼날을 피해 그레이스는 신분을 위장하고 신대륙으로 몸을 피했다. 

그녀의 파트너였던 헤이란은 베르넬리와는 다르게 국내에서 브리스티아의 독립을 이루고자 군을 제대, 신분을 위장하여 은밀히 주요 인사를 포섭하기 시작한다.

 

전설의 공병 잭 셜리,신대륙 이주

 

브리스티아 육군 공병대의 전설적인 공병 잭 셜리 준위 역시 브리스티아의 패배를 계기로 군을 제대, 베스파뇰라의 브리스티아 군세 약화 정책을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하게 된다. 

 

 배럴 중사, 군 전역

 

지원 중대 개인 화기 소대장 배럴은 브리스티아 군세 약화 정책에 따른 군의 체제 개편에 따라 명예 전역 했다. 

 

함께 했던 모든 전우를 잃고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잃게 된 배럴은 이름 뿐인 이발소를 개점한 뒤 술에 빠져 생업을 뒤로 하게 된다.

 

1074

(1524)

케스 키엘체,

베스파뇰라 볼모로

입국

 

베스파뇰라는 브리스티아 총독부에 충성의 의미로 혈육을 볼모로 요구한다. 

 

눈물을 머금으며 체르니 키엘체는 열 살 밖에 안된 어린 아들, 케스 키엘체를 베스파뇰라로 보낸다. 

 

어린 나이였지만 케스 키엘체는 나라를 적국에 판 아버지를 저주하며 피눈물을 삼키고 삼켰다. 

 

1074

(1524)

아첼 가문 멸문

 

대대로 키엘체 가문을 섬기던 기사 가문인 '아첼'이 브리스티아 독립 운동을 준비하다가 적발되어 멸문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첼 가문의 가주의 처형을 집행했던 사람은 체르니 키엘체. 

 

슬픔과 비통함에 처형 집행을 망설이던 체르니 키엘체의 검에 아첼 가주는 직접 뛰어들어 그의 위기를 구해주었다. 

 

그렇게 아첼 가문은 멸문했고 그의 외동 아들은 키엘체, 나아가 힘이 없던 자신의 조국을 저주하며 베스파뇰라로 입국한다. 

 

후에 그는 블러드 네이비에 입대하며 가문과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코드네임으로 활동하게 된다. 

 

아첼 가문의 지원으로 독립 운동을 진행하려던 베일은 독자적으로 특공 부대를 조직, '레지스탕스'란 이름으로 브리스티아 독립 운동을 감행한다.

 

1074

(1524)

카노 키엘체 출생,

체르니 키엘체 사망

 

체르니 키엘체는 늦동이로 카노 키엘체를 얻지만 나라를 팔았다는 죄책감에 수십년을 괴로워 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베스파뇰라 사관학교에서 사상 교육을 받으며 자신과 조국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를 증오했던 케스 키엘체는 유서라며 남긴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오열했다.


그리고 꼭 자신의 손으로 조국을 되찾겠노라고 피로 맹세했다. 

 

 

 
르네상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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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브리스티아력

(오르페시아)

주요사건

 상세

1081

(1531)

케스 키엘체,

브리스티아 총독으로 부임 

 

카노 키엘체,

블러드 네이비 입대

 

체르니 키엘체의 뒤를 이은 임시 총독이 해임되고, 베스파뇰라 왕실과 접선을 유지하던 케스 키엘체가 브리스티아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다.

 

펠리페 대공을 위시한 십인 귀족은 여왕의 처사에 불만을 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에르난데스 후작은 케스 키엘체가 암암리에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했기에 베스파뇰라 특작 부대인 블러드 네이비 감찰관 '레놀드'를 키엘체로 파견한다. 

 

키엘체에 입성한 레놀드는 키엘체 가문의 소공녀, 카노 키엘체를 회유하여 블러드 네이비에 입대시키는 것에 성공, 케스 키엘체는 블러드 네이비에게 동생을 인질로 잡혔다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이후 키엘체는 총독과 감찰관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물 밑에서 끈임없이 전개된다. 

 

1084

(1534)

키엘체 연구소 건립

 

신임 총독 '케스 키엘체'는 '진보'는 '브리스티아의 새로운 빛'이 될 것이라며 일리에 출신의 천재 박사 '마르체티'를 영입하며 키엘체 연구소를 건립한다.

 

현재 키엘체 연구소에서는 '자동차', '비행기', '비공정'을 비롯한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영웅들의 귀환

 

본격적인 독립 전쟁을 준비하는 신임 총독 케스 키엘체는 과거 조국 수호에 모든 것을 바쳤던 브리스티아의 영웅들을 그들이 인지하지조차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브리스티아로 불러들인다. 

 

에두아르도 힝기스, 가르시아 힝기스, 셀바 노르떼, 그레이스 베르넬리, 레이몬드 뷸레어, 잭 셜리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 채 신대륙으로 떠났던 브리스티아의 영웅들이 다시 한 번 '조국'을 위해 브리스티아로 모이게 된다. 

 

브리스티아 -
'독립 전쟁'

 

3년 전쟁 이후, 베스파뇰라에 모든 국정을 빼앗긴 브리스티아가 오랫 동안 준비해온 '독립 전쟁'을 개시한다. 

 

이를 대비하여 파견된 신 십인 귀족 '레놀드 감찰관'과 '블러드 네이비'는 브리스티아 독립군과 교전하지만,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과 과거 3년 전쟁에서 활약한 '브리스티아 용사'들의 투혼을 바탕으로 레놀드 감찰관은 전사하고, 블러드 네이비는 많은 사상자를 내며 패전한다. 

 

이에 스트라타비스타는 브리스티아 독립 전쟁을 도운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도 반역자로 규정 짓고 토벌을 개시해야 된다고 언급했지만 여왕은 '그들도 자신의 가치와 선택을 존중 받을 한 명의 사람이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또한 브리스티아에 대한 식민 정책 또한 근본부터 잘못되었으며, 그들의 자유를 인정한다. 물론 그들이 베스파뇰라의 통제에서 벗어날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이라는 말과 함께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여왕은 새로운 블러드 네이비 감찰관을 파견했고, 키엘체의 총독도 이빨은 드러냈지만 아직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에 다음 단계를 진행하고자 준비를 시작한다.

 

1087

(1537)

비공정,  

'Saint Floor' 제작  

 

 

본래 전투용으로 제작된 비공정을 케스 키엘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키엘체 연구소 마르체티 박사는 운송용으로 개조하게 된다. 

 

많은 물자와 인력, 비용이 따랐기에 총독은 신대륙의 개척 가문들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개척 가문들의 지원 덕택에 비공정은 무사히 제작될 수 있었고, 총독은 해당 비공정에 'Saint Floor'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개척 가문들의 비공정 사용을 허가한다.

 

 

 
문서 정보
문서 버전 :
1.34
최종 수정일 :
2016-04-20 오후 7:08:31
최종 편집자 :
그라나도 에스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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